답사 후기 :

42회 2001.09.12.

  01 인사동길로 들어서다.
안국역에서 인사동길로 들어섰다. 길머리에 늘어선 나무들과 건물로 아침햇살이 마치 백금가루가 날리듯이 강하게 부딛쳐 반짝인다. 어느 것하나 같은 모양이 없고, 낡은 것에서 새롭게 단장한 것까지 건물은 여러 가지이지만, 누구에게나 햇살은 고루 비친다는 자연의 원리를 눈앞에 펼쳐진 조화로운 풍경에서 또한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요시노부 아시하라가 '외부공간의 미학'에서 '동양의 도시에서는 오히려 나무들이 건축의 부조화를 조화롭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검은바닥/인사동의 변화/도시의 자생력에 기대해 본다.
길을 내려오니 그런 조화의 켜로 작용하던 나무들은 금방 사라지고, 검고 투박한 바닥에서 무겁게 떠오른 덩어리들 처럼 벽을 형성한 건물들이 아침의 침묵을 받쳐주고 있다. 인사동길의 새단장은 얼마전에 끝나, 이와 같은 길의 모양을 만들어 냈지만, 왠지 자연스럽지 못한 느낌을 받는 것은 guga만의 감상이 아닐 듯 싶다. 사람이 많을 때는 이 거리가 더욱 여유없어 보이는 것은, 지면을 꾹꾹누르는 듯 보이는 이 검은 바닥들 때문은 아닐런지.... 어쩌면 새로운 것이 들어선 것에 대한 이유없는 거부감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은, 우리 도시의 자생력이다. 시간이 지나고, 서로의 쓰임과 영역이 얽히고, 오랜 보살핌과 아낌의 켜가 쌓이게 되면 이 '낯설게 보이는 인사동 새거리'는 자신의 색을 찾아갈 것으로 믿는다.

02 통인가게에서 답사시작
오늘의 답사는 '통인가게'에서 시작하였다. 답사예정지에는 속하지 않지만, 이 건물을 보고 있으면, 참으로 그 자리에 오래도록 우직하게 서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러면서도 그 우직함에는 나름의 '도시적 지혜' 혹은 '도시적 해법'들이 있음을 알게 된다. 건축물의 전체적인 이미지는 전돌로 쌓여진 커다란 덩어리에 가로로 가늘게 나있는 창으로 느껴지지만, 아래의 1,2층은 외부에 대해 개방적인 모양을 하고 있고, 다시 그 앞의 마당을 끼고 가설점포들이 통일된 모습으로 늘어서 있으며, 옥상에는 정원과 뒤로 물러선 건물이 들어서 있다.

건물의 모양은 아래, 위, 머리로 구분되어 있고, 인사동길에 면하여 자갈자갈한 가설 점포등을 두어 시기 적절한 행사나 영업행위를 하는 등, 나름의 도시적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건물의 내부 공간은 어떻게 되어있는지 미리부터 앞으로 있을 답사가 궁금해진다.

03 백상빌딩 골목으로 들어서다.
조금 길을 내려와 골목으로 들어섰다. 골목이라고 하지만, 어딘지 어색한 느낌이다. 왼편으로 가게들이 수많은 간판을 내걸고 있지만, 이 모습은 인사동이라기 보다는, 종로1가 청진동의 모습에 더 가깝다. 건물들은 노후화되고, 거기에 달라붙은 간판의 수는 많은 그러한 모습이다. 그런데 이것도 그리 오래 가지 못하였다.
5-6층의 버젓한 건물이 서 있는가 했더니, 바로 옆으로 커다란 빌딩 (백상빌딩)이 그 위용을 자랑한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본 이 빌딩의 정면 모습은 생각보다 훨씬 커다란 것으로 계단모양을 하며 위로 더 높아져 있었고, 맨 위에는 그 엄숙한 모습에 어울리지 않는 보울링 핀이 서 있다.

급격한 스케일의 변화
더 길을 가 정면으로는 어수선한 근생 빌딩들 위로 다시 15층 되는 거대한 빌딩들이 차례로 모습을 나타낸다. 얼마되지 않는 거리를 이동하면서, 우리는 낮은 인사동길 스케일에서 별안간 15층 이상되는 건물들틈으로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그 느낌은 매우 급격한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이 곳에서 4-5층의 건물들은 대형건물들의 보조적 기능을 수행하는 근생건물들로 대형건물의 주변과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인사동이라면 이 정도의 건물은 거리 전면에서 지배적인 크기로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었다.

이상한 공존
길이 꺽어지는 왼쪽으로는 홍익빌딩이 대대적인 리노베인션 공사를 하고 있고, 오른쪽으로는 노후화된 한옥을 간단히 '커다란 간판벽'으로 막아세운 국일관이 자리잡고 있다. 이 간판벽은 그야말로 글씨의 크기와 색 즉 'text'만으로 건물전체의 입면을 형성하고, 국일관을 선전하고 있다. 오로지 한옥의 대문만이 종이를 도려낸듯한 비어있는 사각형 안쪽에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이 국일관 간판아래 보이는 한식당이 또한 재미있었다. '숯불갈비, 삼겹살..'이라는 커다란 국일관 간판글씨가 이 가게 위로 지나는 가운데 그 집창에는 '항아리 수제비, 김치찌개, 된장찌개....'라 쓰여져 있다. 아마도 국일관이 자기들이 쓰고 남는 공간을 임대 혹은 전대하여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른 업종이 아닌 동종의 가게들이 이런 방식으로 공존하는 것이 참으로 흥미로워 보였다.

04 한적한 지방도시의 분위기
더불어 국일관이 있는 이 공간은 서울 도심같은 느낌이 없다. 어딘가 지방도시의 한적한 분위기가 나는데 - 마치 삼양사건물 앞의 삼봉길과도 같은- 그 이유는 주변보다 공간이 트여있는 공터가 형성되어 있는 것과 주변 건물에 조경수로 서 있는 나무들이 오히려 이 비어 있는 공간을 감싸듯이 서 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홍익빌딩 리노베이션하다.
길을 돌아 나오니, 홍익빌딩의 전면도 공사장의 안전망과 비게로 덮여져 공사가 한창이었다. 벽 한켠에 붙어있는 플랭카드에는 '미술관련업 환영'이라 써 있는 것이 보인다. 이런 시끄러운 공사장 풍경 구석엔 홍익건물에 들어있는 작은 가게가 여전히 장사를 하고 있었다.

05 태화관로 인사동길 입구
다시 인사동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니,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운 풍경과 만나게 된다. '하나로 의료재단, 명동칼국수, 인산죽염, 한성학원...'등 간판으로 가득찬 낮은 건물들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20층도 넘는 커다란 오피스빌딩. 도대체 어디를 보아 이 길 안쪽으로 인사동길이 있는지 알 수 있을까 싶다.

슬그머니 나타나는 인사동길
어찌보면 그런데도 슬그머니 특화된 거리가 나타나는 것이 원래 우리 도시의 특징인지도 모르지만, 달리 생각하면, 미국의 차이나타운정도는 아니더라도 무언가 인사동이라는 암시가 건축물이나 가로의 분위기에서 암시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해 봄직도 하지만 왠지 너무 직접적인 수단에 기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아직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가장 정확한 판단이리라 여겨진다. 왜냐하면 이 곳은 태화관로를 따라 들어온 대형빌딩의 흐름과 인사동길의 맥락이 충돌하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영역이기 때문이다. 성급한 판단으로 어설픈 조형물을 설치하거나, 도시적 맥락에 대한 무지로 인해 또 다른 커다란 빌딩이 들어서기를 수수방관하기 보다는 커다란 개발을 제외한 작은 움직임들을 지켜보면서 오히려 시간을 두고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도시적 인테리어 <일마레>
공사중인 홍익빌딩옆에는 오원빌딩이 서 있고, 그 1,2층에 '일마레 (il mare)'가 있다. 이태리레스토랑인 이 가게는 우리의 조사에 의하면, 건물의 기존 외부경계면을 변화시켜 도시에 대한 나름의 대응을 하고 있다. 인테리어와 건축 설계를 구분짓는 것은 실제 도시에서는 그다지 의미가 없다. 그것이 건축적 계획이건 인테리어적인 계획이건 외부(도시)와 닿는 경계영역을 어떻게 설정하는가가 무엇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06 고물상골목 / 하나로 빌딩 옆 골목
답사를 계속하자. 우리는 자연스럽게 하나로 빌딩옆에 있는 '지금은 부수어진 한옥골목'으로 들어섰다. 빌딩과 골목지역 사이에는 높이차가 있었고, 그것을 원형계단이 이어주고 있었다. 그런데 이 어설픈 골목공간에 고물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적도에서 보면 사실상 태화관로는 이 길 방향으로 뻗어 가다가, 그 앞에서 살짝 위쪽으로 방향을 틀어 빗기어 지나간다. 그래서일까 이 골목은 골목이라 하기엔 '자그런 공간감'이 없고, 길이라고 하기엔 왠지 적막하다. 거기에 고물상까지 안에 들어있으니, 영낙없는 도시의 그늘같은 뒷공간이다. 그래도 흥미로운 것은 여기에 있는 가게들이 고물상 철재출입문위에 내다 걸은 간판이다. 그 규격이 어렴풋이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서로의 합의하에 이루어진 작업인 것 같았다.

<관훈목기> 안마당
조금더 내려가니 '관훈목기'라는 오래된 가게 간판이 나타난다. 열려진 문으로 빼금히 들여다 보니 조용한 한옥마당이 자리잡고 있다. 용기를 내어 들어가 보았다. 왼쪽은 일본식 주택으로 가게 출입구가 나있었고, 오른쪽은 한옥 대문 2개가 있어 안에 있는 살림집 혹은 가게와 연결되는 듯 하다. 정면에는 한옥 담장위로 2층의 일식집이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서 두가지 추측을 해 보았다. 하나는 여기에 있는 한옥이 왜 이런 방식으로 마당을 끼고 여러건물들과 같이 모여있는지,더불어 인사동길에서 이 곳으로 통하는 통로가 보이지 않는 점등을 미루어 볼 때, 이 곳이 옛날부터 내려오는 커다란 하나의 필지일거란 추측을 하였다.

도시 속의 시이라칸스
또 한가지는 지난번 중학동에서 본 이조목기도 그러했지만, 여기서 본 관훈목기도 매우 오래된 건물에 아주 이전부터 있어왔던 모습으로 있는 것이 아마도 이들 목기라는 가게들이 우리 도시에 들어선 가게들 중 역사가 오래되고, 시대에 따른 형상의 변화가 적었던 가게들이었을 거란 생각을 해본다. 마치 '도시 속의 화석어 시이라칸스'처럼 말이다. 은유 이전에 좀더 많은 관찰과 공부가 필요한 대목이다.

07 인사동 중간길
길을 나와 다시 인사동길로 접어들었다. 아까 나왔던 길 오른쪽에 하우아트갤러리가 있는데, 드라이비트로 외장을 하고, 창 부분에 ㄷ자 모양의 인방을 장식하고, 색상을 원색적으로 구성하고 있다. 이전에 보았던 '성보갤러리'처럼 건축물전체의 이미지로 거리에 나서고 있지만, 정작 인사동길에 대하여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아래쪽 작은 가게들의 활성화를 묶어두는 외양새를 하고 있다.

<갤러리 상>
아래쪽으로 조금 더 가니, 이번에는 '갤러리 상'이 나왔다. 건물 전체적인 윤곽은 네모나고, 갤러리가 있는 1,2층을 덮는 단순한 입면위에 다른 상부층들이 균질한 입면을 하고 있다. 답사 중에 우리는 이 건물을 직접관찰하고 또 뒤로 돌아가 뒷면을 확인하였다. 정면에서의 모습과는 달리 - 사실 이러한 경우는 여기 종로에 그리고 강북의 많은 건물에서 자주 보이는 일이지만 - 뒷면에 뚫린 창은 저마다 다르고 마감상태도 깨끗하지 않았다. 사무실들이 들어있는 복도와 문들 역시 건물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 보였다.

하지만 이러한 건물의 노후화와 정연하지 못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갤러리 상>은 인사동에서 단순한 이미지를 가지면서도, 복합적인 기능을 입체적으로 잘 구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로면에 대하여 1,2층의 갤러리가 대응하고 있고, 상부의 사무기능들은 측면의 입구를 통하여 연결된다. 이러한 수직적 분리와 이를 가시화하는 입면의 리노베이션작업을 통해, 갤러리 상은 simple한 건축물의 이미지와 complex한 도시적 요구를 동시에 만족시키고 있는 듯이 여겨졌다.

08 갤러리 상 뒤의 한옥골목
갤러리 상의 뒤쪽으로는 한옥이 군집하여 있었다. 일부는 이미 없어지고 주차장이 되어, 차들과 밤을 기다리는 포장마차들의 parking장소로 쓰이고 있었다. 여기서 답사를 하는 동안 어느 할머니가 나오셨다. 할머니는 대뜸 우리들에게 여기 재개발 언제해요? 라고 물으셨다. 당신이 15년전에 재개발이 될거라는 소문에 비싼 값을 주고 사 들어왔는데, 팔리지도 않고 재개발도 시행이 되지않아 어쩌지를 못하신다는 말씀이셨다. 주변의 시세는 한 때 평당 2,500만원까지 하였으나, 시기를 놓치고 나니 2,000만원으로 떨어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하셨다. 요즘들어 식당이나 카페등은 영업을 할 수 있게 허락해주어서, 이 골목에도 3개 정도의 가게가 들어섰다 하셨다.

부수어져가는 한옥골목
위에서 본 이 한옥골목의 모습은 여기저기로 이가 나간 컵의 주둥아리처럼 초라한 느낌이 없지 않았다. 일부는 비어있어 더 이상 한옥은 들어설 것같지 않고, 그나마 있는 한옥들도 비닐천막을 덮어 놓아 조만간에 지붕내부의 목재가 낡게되어 폐가처럼 될 운명이다. 할머니의 사정을 생각하면 이 근처가 재개발되어 도심으로서 활성화가 되어야 겠고, 인사동길을 생각하면 그 나마 있는 것이라도 잘 가꾸어 특화된 가로의 특성을 반영하는 골목이 되어야 할 것 같았다.

도시의 자생력이란 무엇인가?
도시의 자생력을 믿는 guga에게 요즈음 들어서 커다란 의문이 생겨났다. 과연 그 자생력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말의 의미 처럼 도시는 그대로 두어도 알아서 관계하고 변화하여 제모습을 찾아가는 것이므로, 그저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면, 수많은 도시 연구자들이나, 행정가들이 실현시키려하는 각종 규모의 재개발이나 도시계획설계 등은 무슨 의미를 갖는가 ..... 어쩌면 그러한 노력들과 도시 내부의 자생력이 모두 결합되어 있는 하나의 거대한 실체가 진정한 의미의 도시적 자생력인가 하는 의문을 안고 있다. 좀더 많은 시간의 발품과 생각 그리고 실제 상황에서의 경험들이 필요함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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