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 후기 :

35회 2001.07.25.

 수요답사 2차의 의의
시작하기 전에 이번 답사의 의의에 대해 말해두어야 겠다 '수요답사2차' 지역적으로는 광화문 서측 정확히는 경희궁 동측 관사지역(수요답사 18회)에서 출발하여 사직동, 내수동, 체부동, 누상동, 누하동, 옥인동, 신교동, 효자동, 통의동을 거쳐 경복궁 서측에서 끝을 맺는 2차 답사가 이 번 35회를 끝으로 마감되기 때문이다. 거의 4달 가까운 기간에 우리는 지난 1차 답사에서 보았던 것과는 다른 대상을 다른 관점과 새로운 방법으로 읽어낼 수 있었다. 이 번 2차 답사에서 특별히 우리가 읽어낼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를 통해 정리하여 발표할 생각이다. 다음 3차 답사는 경복궁 남동측 모퉁이에서 종로로 진입하여 지난번 경로에서 빠진 종로 북쪽지역을 답사할 예정이다. 새로운 관점과방법을 어떻게 지난번 1차 답사의 관점과 방법에 도입할 수 있을런지 우리 스스로 기대가 크다.

장마가 걷히고 나서인지, 이제까지 맞이한 아침 중 가장 더운 것 같았다. 시작도 하기전에 숨이 막히고, 부족한 수면으로 인하여, 제대로 답사를 수행할 수 있을까하는 의심이 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도시는 마치 등산가가 오르려는 산과도 같이 그곳에 있었다. 그가 산을 오르거나 말거나, 산은 거기에 과거에도 그러하듯 앞으로도 존재하는 것이다.

과거 동척사택 자리의 길 이야기
먼저 동척사택(동양척식주식회사의 사택)이 있던 자리, 보다 과거에는 창의궁터였던 곳에 들어섰다. 어느 누구라도 이 곳의 지적도를 본 사람이라면, 의아심을 가질 모양을 하고 있는데, 간단히 정리하면, '각 필지는 있으나 그곳으로 가는 길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옛날 땅따먹기 놀이의 재현판을 보듯이 현재의 지적도에는 길이란 우리가 들어가려고 하는 곳에 있는 ㄱ 자 모양의 길 하나 뿐이다.
아니 이런 하는 생각으로 과거의 지도 (1921년)를 보면 동척사택이 커다란 부지를 점유하고 그 안에 단지내 도로가 여기저기로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로 들어가 보면, 지적도와 같이 길이 없는 것도, 그렇다고 과거의 지도와 같은 단지내 도로가 그대로 남아있는 것도 아니었다.
답사경로지도를 참조하여 보면, 현재의 길은 크게는 남북으로 연결된 두 개의 도로와 추사로로 통하는 끝부분에는 아주 작은 샛길로 연결되는 동서방향의 길 그리고 나머지 연결이 안된 지번들을 연결하는 작은 막다른 골목 몇 개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아마도 건축가 황두진 소장의 '통의동이야기'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적산가옥 불하 과정에서 자기집 앞의 도로는 자기땅으로 지적 정리되었을 것으로 추측하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는 정부나 지자체에서 이들을 도로로 적절한 보상을 해주고 관리해야 옳지만 도시계획도로 신설의 경우를 제외하고 실질적인 도로를 행정적인 도로로 편입하는 경우는 행정 관행상 없는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한다. 그러면서도 재미있는 것은 어느 집의 경우는 자기 땅을 도로로 내어놓았고, 어느 집은 있던 단지내 도로를 그대로 점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떠한 기준으로 그들이 그러한 결정을 내리게 되었을까 하는, 서로 다른 이해를 가진 개인 개인이 뭉친 집단의 보이지 않는 의사결정 작용의 원리가 매편입하여우 궁금해지는 까닭이다.

계단실이 특이한 광업협회
길이야기는 그만하고 동척사택자리 안으로 들어가 보자. 공사현장의 뒤로 보이는 근대적 형식의 건축물이 눈에 띄어 자연히 그곳으로 발길을 돌리었는데, 그곳은 광업협회였다. 이곳의 사무장격인 어느 분과 여러 가지로 이야기를 나눌수가 있었는데, 건물은 사실상 공업화가 진행되던 60년대에 땅은 정부로부터 불하받는 식으로 하여 협회사람들이 돈을 모아 62년에 준공한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정식으로 토지 소유의 문제가 마무리되지 않아, 80년대 중반이 지나서야 정식으로 그 소유권을 인정받았다고 하였다.
건축물은 5층 높이로, 엘리베이터는 없으며 1층과 5층 부분을 독립적으로 구분하여 조형한 것이, 크게 눈에 띈다. 그리고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역시 계단실이었는데, 외부에서도 계단의 단모양이 그대로 내비칠 뿐아니라, 내부에서도 계단의 아래 바닥도 단모양을 하고 있음은 참으로 신기하였다. 아마도 이것이 당시의 일반적인 구법이었는지 아니면, 특수한 것인지는 보다 많은 예를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앞으로는 위에서도 언급한 황두진 소장이 설계한 건축물이 한창 구조물 공사를 하고 있었다. 광업협회사람들은 굳이 대지 뒤쪽 그러니까 자신들과 면한 곳에 차량출입구를 낸 것에 불만이 많은 듯하였으나, 경복궁을 바라보고 있는 전면을 보다 조용하고 깨끗한 모습으로 두려고 하는 건축가의 노력을 짐작할 수 있어 그 분들의 불만에 묵묵부답하며 답사를 계속하였다.

이 일대의 건축물들은 필지가 큰 만큼 그 속에 들어가 있는 건물들도 큰 것들이 많았다. 더불어 집이라 하기에는 너무 규모가 크고 입면의 느낌이 경직되 보이는 건물이 많았는데, 이는 아마도 광업협회아 비슷하게 정부가 점유하여 정부관련의 시설로 이곳에 여러채의 건축물들을 지어놓지 않았을까하는 추측을 하게 한다.

여러 모양의 집들
보다 안으로 들어가면, 시설같은 건물보다는 저택이랄 수 있는 것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어떤 건물은 매우 이상한 외부마감재를 하고 있었는데, 정확히 그것이 무었인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건물의 조형은 근대적인 형식에 단순한 매스들을 대비시켜 매우 안정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또 특이하게 생긴 건물도 있었는데, 기와를 대문에 얹고 근대적 양식의 건축을 하고는 다시 지붕층에 기와지붕을 얹은 수녀원이 그것이었다. 한편으로는 과거의 관사가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 아닌가 짐작하게 하는 것도 있었다. 담장 너머라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일식기와형식에 큰 마당을 두고 다른 한 켠엔 온실을 둔 집이 그것이다.

막다를 골목의 예언자들 '화분, 화초들'
막다른 골목으로도 들어가 보았는데, 가는 도중에 홀로 서있는 다세대 주택을 발견하였다. 이전의 창성동이니 효자동, 옥인동에서 무리지어 들어섰던 다세대군과는 다르게 막다른 길 한켠에 서있는 그 모습은, 다세대들로 인하여 고립되어버린 한옥만큼이나 쓸쓸하고 썰렁한 모습이었다. 아마도 주차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차로를 주차로로 사용할 수 있는 연접주차방식이라든가, 굳이 담장을 둘러 좁은 공간을 더욱 좁게 할 수 없다는 이유때문인지, 이전의 경계는 허물어져, 골목의 공간은 상실되고, 회색빛의 낯선 공간이 자리잡게 된 것이다. 막다른 골목이야기를 계속하면,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화초가 먼저 눈에 띄었는데, 우리는 이 화초나 화분들을 '막다른 골목의 예언자들'이라 말하곤 한다. 100퍼센트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화초가 보이기 시작하면, 그 길은 막다른 골목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마도 막다른 골목인 만큼 '사적인 공간 혹은 영역화'가 쉽기 때문일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그래서 인지 그 길은 더 이상 갈 수 없었고, 지적상으로는 길이 있을 곳에 낡은 건물과 물건들이 얇다란 함석문을 너머로 자리하고 있었다.

백송이 만든 void space
남북으로 통하는 길중 하나를 가다가 발견한 것에는 백송이라는 구청소유의 문화재급 나무가 있었다. 거의 필지 하나를 다차지하고 있는 이 나무에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나무용 영양제병들이 여기저기 메달려 안쓰러운 모습이었으나, 주변의 집들 입장에서는 이 덕분에 작은 pocket park같은 void space를 얻게 되었으므로, 매우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또 엉뚱한 이야기이지만, '우리 도시 곳곳을 어떻게 하면 쓸모있게 비워놓을 수 있는지' 우리모두 머리를 맞대고 궁리해야 하지 않을까?

대문이 막혀있다
길을 돌아 큰 길로 나서기 전에 본 건물에서 특이한 변형의 예를 발견하였다. 그것은 대문을 막아놓은 것인데, 보통 벽에난 창이나, 문을 막아놓은 것은 보았어도, 주출입구로 설정한 옥외대문을 막아놓은 것은 매우 특이하였다. 후면에는 별도의 출입구가 있는 듯하였으나, 왜이러한 결정을 하였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우보라는 레스토랑 - 격리되었던 두 지역의 결합
큰길로 나와 바라본 통의동의 가게 혹은 건물들은 1-2층의 저층이 많았으며, 근생건물도 3-4층으로 지적도에서 볼 때 그 공간깊이가 얕은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가운데 매우 눈에 띄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우보'라는 레스토랑이었다. 이미 동척사택 관내를 둘러 보면서. '아 이집은 식당으로 개조되었겠군'하고 짐작하던 뒷모습의 그 집이 바로 이 식당이다. 외부적인 모습은 스페니쉬 스타일에 내부로 사람을 불러들이는 자연스러운 도입공간을 두었으며, 조금은 이국적이지만 안정적이고 세련된 품세를 지니고 있는 가게였다.
그러나 우리가 이 건물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이 건물이 필지들이 표현해 왔던 과거의 역사적 경계성을 허물고, 새로운 시대의 필요에 의해 재구성·결합되었다는 점이다. 과거의 지도와 현재의 지적도에서도 확인되듯이 동척사택과 이 영역을 둘러싼 건물군간의 관계성은 지금까지도 거의 없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주변의 근생건물들은 한 켜라 할 수 있는 잘리워진 필지내에서 도시가 요구하는 기능을 수용해야 했기에, 매우 제한적인 기능을 지닌 기간(機間)들이 들어오거나, 문을 닫고 있는 실정이었다.
한편, 사택자리 내부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조금은 있어왔는데, 사택과 큰 길 사이에 매우 작은 스케일로 나 있는 샛길을 통해 접근할 수 있는 곳에 한식당이 자리 잡은 것이 그 예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작은 변화나 기간의 적응양상으로는 새로운 도시적 요구와 이에 대응하는 기간들을 수용할 수 있는 건축이 들어설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 속에서, '우보'는 매우 자생적이면서도 현명한 돌출구를 뚫어 놓았다. 그것은 바로 '이제까지의 역사적 흔적으로 유지된 경계를 허물어, 큰 길에 면한 작은 필지와 내부에 들어 있는 커다란 필지가 결합된 것'이다. 그럼으로서 우보라는 고급 레스토랑은 그 수준에 걸맞는 접근성과 기능에 적합한 규모의 공간과 기능을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시대의 흔적을 뛰어넘는 새로운 움직임이 도시 속에서 자생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새로 밝혀진 사실들
그러나 여기서 고백할 일들이 답사와 답사후기를 정리하는 사이에 생기게 되었다. 그것은 우보의 필지 합필의 시기문제인데, 이곳이 옛날에 주택이었던 시기에 이 집을 다녔었다는 분과 대화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분의 이야기로는 그 집을 드나들던 당시에는 이미 우보는 합필이 된 상태였고, 그 당시라는 것이 추사로가 가로확장이 되기 이전, 즉 작은 필지들이 큰 길에 면하게 되는 1970년대 중반 이전이었다는 것이다.
즉 우리 guga의 설명으로는 우보의 합필 현상은 도시속에 요구에 대응하는 합리적인 필지변형의 과정이지만, 실제상황은 그것보다도 우연적이고, 비합리적인 현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건축물의 조형이 스페니쉬 스타일로 renovation된 것이라는 해석도 원래부터 그런 모양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이야기되어, 합필가 더불어 건축조형이 기간의 요구에 의하여 바뀌게 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인과관계와 합리성으로 도시를 모두 설명하는 것은 어쩌면 더 큰 오류를 낳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한 편으로, 우보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현실 도시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유력한 가능성'의 하나인 것 또한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이 지역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아야 겠다.

아래 블록의 풍경 - 잘리워진 조직
큰 길을 타고 아래로 내려오다 식당과 술집이 밀집한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아마도 이들은 근처에 있는 관공서나 사무실들의 배후지 역할을 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건너편에는 적선시장의 입구부분이 보이는데, 과거의 지도에서 보면, 이 길과 건너편 사이에 물길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있었으며, 아마도 이것은 사람의 통행이 집중되어 과거에도 시장이 이 길에서 적선시장까지 연장되었을 가능성을 짐작하게 한다.
지도를 계속 보면, 광화문앞을 지나는 사직로가 뚫리기 전에는 적선동에 속하는 주거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큰 길이 나고도 여전히 이곳의 필지는 작은 모양들이 유지되어 주변 지역의 배후지로서 그 기능이 바뀌어 갔을 것이다.

작명소가 많이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추사로를 주변으로 그리고 이 블록에도 작명과 운세등을 보아주는 가게가 제법 많이 있다는 것이다. 이점에 관해서는 향토사학적인 보충이 필요하여 넘어가기로 하고, 이들 기간들은 주로 한옥이나 일식주택등 낡은 건물에 입지하고 있는 것이 많음을 볼 수 있었다.

복개는 도로확장 보다 확실히 이전에 일어났다
여기에서도 어느 작명가 분과 인터뷰를 하였는데, 이분의 작명소가 있는 바로 옆집이 문화부장관까지 지낸 이○○씨의 생가라는 말로 시작하셔서, 매국노의 후손들이 오히려 좋은 교육을 받고 이 사회의 권력계층으로 남고, 독립운동이나 참전한 사람들은 오히려 많은 피해와 압박을 받았다는 '뜨거운 연설'을 들으며, 도중도중 조각 질문을 하여 이 곳의 물길의 복개 시기가 추사로의 도로 확장(76년 전후)보다 훨씬 이전의 것임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여기에도 한옥이 밀집되어 있다
그리고 이 블록이 한옥군이 상당히 밀집되어 유지되고 있는 지역임도 알 수 있었다. 식당등으로 사용되는 것들이 주로 많았으며, 그 중에는 주거로서 아직도 사용되고 있는 것도 있었다. 일부 아주 오래된 4-5층 규모의 근생건물들이 있기는 하지만, 왜 아직도 이곳에 이렇게 많은 한옥군이 사직로라는 커다란 대로에 두터운 외피도 없이 (종로와 같이 큰 길로는 중층이상의 건물들이 들어서고 그 이면으로 저층밀집군들이 존재하는 형식이 아닌)일부는 벌겋게 드러난 채로 남아 있는지가 의아했다. 그러한 상대적 낙후의 차이는 건너편의 적선시장 쪽 외피면과 비교를 하여도 그러하였다.

끝으로 몇게의 노후화가 심한 임대용 근생건물들을 보았다. 계단참의 천장높이가 매우 낮고, 관리 상태는 지극히 부실하며 동선조차 효율적이지 않은 건물들이 과거의 화려했던 영화를 추억으로 묻은 채 그곳에 있었다. 블록의 일부가게들은 아예 문을 닫은 채 사용하지 않는 것도 눈에 띄었다. 앞으로 이 건물들의 미래는 그리고 이 블록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하는 궁금증을 뒤로 하고 수요답사 2차라는 4개월에 걸친 긴 답사의 중간마침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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